비트코인 채굴기의 열을 식히려고 작동한 선풍기에서 과열로 불이 났다면, 제조사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12단독 최성수 부장판사는 현대해상화재보험이 선풍기 제조업체 B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을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현대해상은 2021년 10월 보험가입자 A씨가 B사의 공업용 선풍기를 사용하던 중 불이나 손해를 입자 A씨에게 5000만원을 지급한 뒤 소송을 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10월3일 오후 2시45분쯤 인천 부평구의 한 건물에서 공업용 선풍기에 붙은 화재로 집기와 재고 물품 등이 소실되는 사고를 겪었다.
현대해상화재보험과 보험 계약을 맺었던 그는 지난해 8월 27일 B사의 공업용 선풍기를 구매하고, 비트코인 채굴기를 돌리며 선풍기의 전원을 끄지 않고 24시간 작동시켰다.
가상자산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장비를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시켜야 하는데, 이때 채굴 장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 달여가 흐른 뒤인 10월 3일 선풍기 모터 연결 전선 부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건물 내 집기와 재고 물품 등이 소실됐고, 현대해상화재보험은 A씨에게 손해보상급 5000만원을 가지급했다.
이후 현대해상화재보험은 “선풍기가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며 제조업체를 상대로 1억4000여만원의 구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은 현대해상화재보험의 청구를 기각했다. 선풍기가 정상적으로 사용됐다거나, 소비자 측 과실 없이 통상 발생하지 않는 사고였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A씨 등은 선풍기 구매 후 30일이 넘는 기간 비트코인 채굴기와 선풍기를 24시간 가동했다”며 “이는 선풍기가 과열될 가능성이 있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선풍기가 제품의 품질·성능에 있어 안전성과 내구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이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선풍기가 정상적으로 사용된 상태로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 측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현대해상화재보험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