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지갑에 잘못 이체된 남의 가상화폐를 돌려주지 않고 사적으로 사용한 30대가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수원고법 형사3부(김성수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예비적 공소사실 배임) 혐의로 기소된 A(32)씨의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피고인이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2018년 6월 알 수 없는 경위로 그리스인 B씨의 가상지갑에 들어있던 199.999비트코인(14억8000만원 상당)을 이체받았다.
이에 A씨는 이튿날 본인의 다른 계정 2곳으로 199.994비트코인을 이체했고, 이 가운데 일부를 원화로 환전해 채무 변제, 유흥비 등으로 사용했다. 이후 158.225비트코인은 반환했다.
이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2심은 모두 배임죄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 성립한다.
1·2심 재판부는 A씨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따라 잘못 송금된 비트코인을 보호해야 했으나 이를 위반하고 불법적으로 이득을 취했다고 봤다.
하지만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고 피고인이 어떠한 경위로 이 사건 비트코인을 이체 받은 것인지 불분명하다”면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 주체가 명확지 않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설령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직접 부당이득 반환 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사람을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경우에는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신임관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대법원도 지난해 12월 A씨의 상고심에서 ‘배임죄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가상자산을 잘못 이체받은 자는 부당이득반환 의무를 부담하게 될 수 있지만, 이는 당사자 사이 민사상 채무에 지나지 않는다”며 “피고인이 가상자산을 보존하거나 관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당사자 간 신임관계에 기초해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함으로서 배임죄 성립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