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퇴직연금 계좌의 가상화폐 투자를 법제화한 가운데 경제 위기에 따른 청산시 가격 하단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14일 ‘401(k)와 코인 리스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정부가 퇴직연금 계좌의 가상화폐 투자를 법제화한 것이 경제위기 발생 시 가격 하단을 방어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상화폐를 미국의 대표적 퇴직연금 계좌인 401(k)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암호화폐 상장지수펀드(ETF)등이 퇴직연금 계좌에 정식으로 편입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해 박 연구원은 “가장 안정적으로 운용돼야 할 자금이자 경제침체 시 긴급 유동성 공급원인 퇴직연금마저 암호화폐의 영향권에 들어갔다”면서 “암호화폐는 현대 경제 시스템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401(k)의 성격상 위험자산인 가상화폐 투자 비중은 1∼5% 수준일 것”이라며 “2027년 1분기에 가상화폐 시장으로 유입될 401(k)발(發) 유동성이 약 890억∼4470억 달러(한화 약 122조8200억∼616조8600억원)일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는 “가상화폐는 법정화폐가 가치 절하될 때 합리적인 헤지수단이 되고, 퇴직연금 계좌에서의 분산투자 대상이 늘어나는 만큼 투자 자체의 효율성이 제고되는 점은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안정성이 문제”라면서 “암호화폐는 내재가치와 담보자산도 없이 오로지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와 수급에 좌우되기에, 경제위기가 발생해 시장이 청산이라도 된다면 가격 하단을 방어해줄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12일 기준 글로벌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은 4조1900억 달러인데, 이는 지난 2000∼2002년 당시 증발한 나스닥 시총 4조 달러와 맞먹는 규모”라며 “차이가 있다면 암호화폐 시장 청산이 며칠 내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당장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상자산이 가져올 수 있는 ‘테일 리스크’(발생 확률은 극히 낮지만 발생 시 손실이 매우 큰 위험)도 좌시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